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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관람 시 역사 보기

 

초기 청와대 관람 신청하면 일주일 정도 뒤에나 방문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바로 예약이 가능할 정도로 조금은 한가해 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 관람 예약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위치

청와대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1입니다. 북악산을 뒤에 두고 있으며, 시청과 종로·을지로 등 사무실이 밀집한 도심지역의 북쪽에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1년 12월 20일, 청와대의 주소가 ‘광화문 1번지’로 처음 정해졌고,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1월 1일에 한국식 주소인 ‘세종로 1번지’가 되었습니다. 2014년에 도로명 주소 체계로 바뀌면서 지금의 주소가 되었습니다.

 

 

청와대 역사

고려시대

이궁(離宮)이 있던 자리 청와대 주변 지역이 역사서에 처음 기록된 것은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입니다. 고려는 도읍이었던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을 삼경으로 두었는데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을 설치하고 남경으로 삼았습니다. 남경은 ‘남쪽의 서울’이란 뜻입니다.

 

 

 

조선시대

청와대 주변 지역에 대한 기록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도읍 이전을 논의하면서 다시 나타납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1394년에 관리들에게 새 궁궐터를 찾게 했고 관리들은 고려 숙종 때의 이궁 자리는 너무 좁으니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궁궐을 짓는 것이 좋겠다고 임금께 보고했습니다. 태조는 그해 12월 정도전에게 궁궐을 짓게 하여 이듬해 9월에 경복궁을 완성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경복궁에서 거처하였고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서는 왕이 신하들과 함께 천지신명 앞에 맹서하고 논공행상을 하는 회맹 의식이 치러졌습니다. 『실록』 등에 나오는 이 시기의 경복궁 후원(금원 또는 상원으로도 불렸음)은 오늘날 청와대와 가까운 경복궁 북쪽의 담장 안쪽에 있었습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약 27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흥선대원군이 중건했습니다. 이 때 경복궁 신무문 밖 지금의 청와대 지역에 후원(북원으로도 표기)을 지었습니다. 이곳에는 1868년부터 과거시험장의 기능을 하던 융문당, 융무당을 비롯하여 오운각, 옥련정, 경농재 등이 차례로 들어섰고 1869년부터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 1929년에 조선총독부가 통치 20주년 기념으로 조선박람회를 경복궁과 후원에서 개최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습니다. 조선박람회가 끝난 후 한동안 공원으로 있었던 경복궁 후원에 일제는 1937년부터 1939년에 걸쳐 조선 총독의 관사를 지었고 그 일대를 계속해서 경무대라고 불렀습니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1945년 광복 후에 2년여 기간은 미군정 사령관의 관저로 사용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이화장에서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고 1층은 집무실, 2층은 관저로 사용했습니다. 1960년 8월에 취임한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라는 명칭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다고 하여 1961년부터 이름을 청기와를 덮었다는 의미에서 청와대로 바꾸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기에는 청와대 기구가 확대됨에 따라 건물의 보수·증축과 함께 상춘재, 영빈관 신축 등 건물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위상과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밝고 진취적인 청와대를 새로 짓기로 하여 1991년 9월 현재의 본관을 신축했습니다. 그리고 1993년에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조선총독이 기거했던 구 본관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하였고, 2022년 5월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면서 청와대는 국민에게 전면 개방되었습니다.